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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끝나도 자영업 사태 해결 안돼… 홀대 정책이 문제” - 국민일보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은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출신이다. 대기업에서 거시경제를 다루다가 자영업을 연구 주제로 삼은 그는 “자영업 문제는 한국 사회 전체의 시스템 문제”라며 “자영업 문제가 풀려야 소득 불균형과 사회 양극화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영희 기자

“사실은 자영업의 위기가 코로나 때문이고, 코로나가 끝나면 자영업 문제도 해결될 거라고 오해할까 봐 우려스러워요. 자영업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건 코로나가 아닌 역대 정부의 자영업 홀대 정책이에요.”

한국은 자타공인 ‘자영업 왕국’이다. 전체 취업자 2700만명 중 550만명이 자영업자다. 일하는 사람 다섯 명 중 한 명이 자영업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자영업자 문제가 요즘처럼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건 처음이나 다름없다. 각자도생하던 자영업자들이 뭉쳐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금지 철회를 요구하며 차량 시위를 벌였고, 1호 공약으로 자영업자 지원 정책을 내놓은 대선주자도 등장했다.

권순우(60) 한국자영업연구원장에게 벼랑 끝에 놓인 자영업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권 원장은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과 한국은행 통화정책 자문위원 등을 거친 이코노미스트다.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유난히 높습니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25%를 맴돌다가 지난 6월 집계를 시작한 지 39년 만에 가장 낮은 20.2%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은 6%, 일본은 10%이고요.

“한국의 경제 수준이면 비중이 훨씬 낮아야죠. 경제가 발전할수록 큰 규모의 기업들이 늘어나고 거기에서 일하는 임금 근로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영업 비중이 줄어듭니다. 한국은 그 과정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직원이 250인 이상 되는 기업에서 일하는 종사자 비중이 1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입니다.”


-기업들이 생산해 내는 부가가치나 생산량에 비해 고용을 적게 하고 있다는 말씀이네요.

“기업도 변명거리가 있어요. 제조업 종사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다가 1990년대 초반부터 줄어들었거든요. 그 분기점을 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형성된 ‘87년 체제’가 공고화되면서부터라고 봅니다. 열악했던 임금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개선되는 계기가 됐죠. 그런데 이후 30여년간 임금 노동자의 노동권이 강화되면서 노동시장이 경직되고, 기업은 거기에 맞춰 적게 뽑아서 많은 일을 시키는 과소고용 과잉노동 전략을 택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보다 임금 노동자 일자리가 확실히 늘었을 테고 자영업자들이 좁은 내수시장에서 과잉 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자영업 문제의 근본 원인이 역대 정부의 반(反)자영업 정책이라고 하셨는데요.

“자영업자는 제도적으로 정치적으로 모두 왕따였어요. 87년 체제의 노동 경직성, 그리고 수출과 물가 안정을 위한 물가 정책, 최근의 최저임금 정책이 그렇죠. 앞의 두 정책으로 자영업 부문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타를 때리고 거기에 코로나가 겹쳐서 빈사 상태가 된 거죠.”

-물가 정책을 언급하셨는데, 자장면 치킨 이미용 세탁 같은 자영업자들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더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셨죠.

“역대 정부가 물가 관리를 한 건 수출 경쟁력을 위해 국내 재화 서비스를 생산하는 세력들을 희생시킨 거예요. 특히 설렁탕 목욕탕 같은 서비스는 서민들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서민들을 위해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어요. 그럴듯하지만 그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게 서민이에요. 경제 전체로 보면 그런 부분의 가격이 올라야 국민 전체로부터 서민으로 소득이 이전되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런데 서민 자영업자가 생산하는 재화 서비스 가격을 억눌러서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늘어나지 못한 거예요.”

-최저임금 인상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보장받도록 한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포함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자영업자에게는 문제를 하나 더 얹은 거예요. 소득주도성장의 대전제는 기업과 자영업자가 임금을 올려줄 역량이 있냐는 건데, 영업이익으로 은행 이자도 못 갚는 한계형 중소기업이 20~30%예요. 자영업자들은 또 어떻고요.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없으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죠.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2017년에 165만명이었어요. 지금은 128만명이에요. 벌써 40만명 가까이 줄었어요. 이들이 직원 두세 명을 고용했었다고 하면 100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없어진 거예요.”

-문재인정부는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을 신설하고 코로나19 이전까지 여섯 차례 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내놨습니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사회보험료 지원 등을 담았는데요.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대책이라는 게 그때그때 다독거리는 임기응변식이었어요. 연명할 수 있도록 금융 지원, 세제 지원하면서요. 카드수수료 인하처럼 비용을 조금 줄여주는 게 자영업 자체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키워주는 게 아니잖아요. 때마다 등장하는 저금리 대출 지원은 결과적으로 자영업자의 빚만 늘렸고요.”

권 원장은 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 통계를 내밀었다.

“2017년 이후 임금 노동자 외 가구, 그러니까 자영업자와 무직자의 소득은 줄어들고 임금 노동자의 소득은 늘어났어요. 지난해 임금 노동자 외 가구의 월평균 사업소득(214만3566원)이 임금 노동자 가구 임금소득(496만9603원)의 43%밖에 안 돼요. 2003년에 67%였고 2008년 이후에는 56% 정도로 유지됐었고요. 임금 노동자 가구 임금소득과 비임금 노동자 가구 월평균 사업소득 격차가 2017년 190만원에서 2020년 283만원으로 93만원이나 더 벌어졌어요. 소득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든 이걸 원상복구할 정책이 급선무 아니겠어요.”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법은 뭘까요.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는 노동개혁과 기업개혁이 이뤄져야죠.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는 정규직이 되면 높은 소득과 안정된 직장을 갖지만 ‘워라밸’이 낮죠.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는 물질적인 안정조차 보장을 받지 못하니까 한국 노동시장은 모두가 불행한 구조예요. 크게 보면 이건 저출산을 포함한 한국의 지속가능성 문제로 연결돼요. 누구도 안정적으로 2세를 낳을 여유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자영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동시장 구조는 바뀌어야 해요.”

권 원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규직 임금 노동자가 1300만명입니다. 비정규직이 750만명이에요. 자영업자에 무급 가족 종사자까지 합치면 650만명이고요. 비정규직도 최저임금이 무작정 올라가면 일자리가 사라지는 잠재적인 자영업자예요. 그런데도 노동시장 구조는 철저하게 정규직 중심이에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정부와 기업과 노조가 서로 현 상황을 크게 변화시키고자 하지 않으면서 즐기는 거라고 봅니다.”

-추가 고용으로 과잉노동을 줄이면 임금 노동자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자영업자를 비롯한 신규 노동자들이 새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만 결국은 해고가 쉬워진다는 건데요.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되는데, 그게 어렵죠. 그러니까 정치의 역할이 필요한 거고요. 국가는 어느 한쪽이 약간 손해를 볼 수 있어도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국민 전체의 삶의 질과 효용이 높아진다면 그 정책을 채택해야 하는 거예요.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저항이 있겠지만 10년, 20년 후에는 분명히 지금보다 더 괜찮은 노동시장이 돼 있을 거예요.”

-소득 하위 88%에게 선별 지급하기로 한 5차 재난지원금은 어떻게 보시나요.

“재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지원하니까 요즘 말하는 공정의 잣대에도 맞지 않고 재정의 제약에도 맞지 않는 거예요. 통계를 보면 누가 재난을 당했는지 아주 명확해요. 음식 숙박 개인서비스 그런 업종이죠. 예술 스포츠 영화 분야는 매출 증가율이 20% 가까이 떨어졌어요. 왜 그들에게 피해가 집중됐겠어요. 영업 제한·금지 때문이잖아요. 그들의 희생을 통해 코로나 확산을 줄여서 한국경제가 파국으로 가는 걸 막았으니 그들에게 빚을 진 거예요. 지금 이 시점에 이렇게 거의 모든 국민에게 다시 지원해주는 나라가 있나요. 일본이 지난해 초에 전 국민 대상으로 지급했지만 그다음엔 없었죠. 5차 재난지원금은 경제적 논리가 아닌 철저하게 정치적 논리에 의한 재난지원금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자영업의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여전히 어렵겠죠. 하지만 이번 기회에 자영업 문제를 더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생기지 않을까요. 자영업이 홀대받은 건 표심의 응집력이 없는 세력이기 때문이었는데, 자영업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정치적인 대우도 달라지겠죠. 장기적으로도 한국경제가 한 단계 더 점프하려면 자영업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에요. 자영업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소득 불균형 문제를 풀 수 없고, 결국 사회 양극화가 지속되는 겁니다. 자영업 문제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체의 시스템 문제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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