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학생 개별문제 아닌 구조적 폭력…피해자 측 참여해야"
(서울=연합뉴스) 문다영 기자 = 서울지역 대학에서 최근 성희롱·성추행 등 교수들의 부적절한 행태가 잇따라 대학가에서 논란이 되고 있으나 학생들은 자신들이 해당 교수들의 징계 절차에 관여하지 못하고 진행 과정에 관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는다며 '깜깜이' 징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외대 명예교수 A씨는 자신이 강의하는 경영정보학개론 2020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 범위에 '더 벗어요? - 남자는 깡, 여자는 끼' 등의 성차별적 글을 포함하고 학생들에게 읽도록 강제했다. 학생들이 반발하자 학교 측은 사안을 성평등센터 조사위원회에 회부하고 대체 강사를 투입했다.
학교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고 처분을 내렸지만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나현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은 3일 "조사위원회에는 학생이 위원으로 참여했지만 징계위에는 학생이 참여하지 않는다"며 "징계 결과가 나와도 피해 학생들에게조차 알려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교원 징계 절차는 각각 교육공무원 징계령과 사립학교법에 따른다. 이와 관련한 교원징계위는 해당 학교 교원이나 이사, 외부인사들로 구성되지만 학생 대표자는 포함하지 않는다.
서울대 인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교원징계위에 학생 참여가 보장되지 않고 피해사실 확인 절차가 체계적이지도 않다"며 "징계위원들이 가해교수와 비슷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문제제기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강태경 전국대학원생노조 정책위원장은 "대학교 징계위원회는 외부 위원이 있다 해도 다들 아는 사이다"며 "좁은 학계이고 교수의 영향력이 클수록 제대로 된 징계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고려대 의대 교수가 학생들의 유전자를 무단 채취한 의혹으로 지난달 교내 기관생명윤리위원회에 신고된 사건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징계가 공정한 과정을 거쳐 이뤄질지 의심하는 분위기다. 설령 징계가 내려진다고 해도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문제제기 당사자들에게 결과가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상조사를 거쳐 비위사실이 확정되고 징계가 결정되기 전에는 가해자-피해자 분리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시행할지가 학교 측 결정에 달린 점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인권센터 심의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B씨는 "별도의 피해자 보호조치가 있었던 경우가 없었다"며 "인권센터장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공간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요청에 불과할 뿐 강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학내 조사를 믿을 수 없다고 섣불리 민·형사절차를 밟기도 쉽지 않다. 학내 조사절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강태경 위원장은 "고소·고발을 하면 학내 위원회는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손을 놓게 된다"며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그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징계위 결과가 학생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건 이같은 사안이 교수자와 학생 간 개별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구조적 폭력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라며 "징계위에도 반드시 피해자 측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이 참여해야만 징계 수위 결정에 공정성을 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zer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20/08/03 07:15 송고
August 03, 2020 at 05:1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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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성희롱 등 문제제기해도…징계논의엔 소외되는 학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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