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만 보는 특례상장, 옥석 가리기 제대로 안 된다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서 특히 신약 개발 기업들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본시장의 제도적 결함이다.
‘셀프공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관된 기준과 제재 규정이 없는 공시제도, 개인 투자자금에 의존하게 유도하는 증시 특례 상장 제도, 옥석을 가릴 능력이 부족한 투자자 등이 바이오 기업들의 무분별한 행동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신약 개발 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가장 시급히 정비해야 할 제도로 ‘공시’를 거론한다. 문제가 된 바이오 회사들이 수시공시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주가 띄우기’에 나서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상장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주요 경영상 정보를 공시할 수 있는데, 별다른 가이드라인이나 제재 기준이 없다보니 멋대로 임상 결과를 해석하거나 불리한 결과를 숨기는 행태가 나온다는 것이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수시공시는 셀프공시나 다름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 의약품청(EMA) 허가 신청 과정에서 불리한 정보를 숨기거나 혹은 섣불리 인·허가 정보를 해석해 공개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2000년대 초반 바이오 회사를 창업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현직 CEO는 "지난해 관련 제도가 어느 정도 정비되기는 했지만, 몇년 전만 해도 미국 등 글로벌 임상 3상 결과 중 좋은 것만 골라 공시하는 업체들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이 CEO는 "구체적 성과 없이 글로벌 임상 3상에 간다는 뉴스만으로 주가가 급등하고, 거꾸로 임상 결과가 좋지 않다면 주가가 폭락하니 회사 입장에서는 무리수를 둘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은 규제가 아닌 만큼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모범사례와 완전히 배치되게 중요사항을 공시했을 때는 거래소 공시 규정 위반사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위원회 입장이다. 그러나 ‘완전히 배치’됐다는 판단이 내려지기가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또 다른 바이오 업체 CEO는 "긍정적인 내용을 부풀리거나 부정적인 내용을 축소하는 행태가 일반적인데, 이를 딱 잘라 문제 삼으려면 여간 입증하기 어려운 게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명확한 제재 규정이 없다면 또다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미국에서 신약 허가 업무를 담당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바이오 업체들이 임상 관련 사항을 허위로 공시한 게 적발될 경우 완전히 퇴출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한다"며 "문제가 될 경우 업계에 발을 못 붙이게 되니 까다롭게 공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바이오협회장에 취임한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임상시험 성패기준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고 협회장은 "그동안 기준이 없다 보니 많은 회사에서 주관적으로 (임상시험의) 성공과 실패를 발표한다. 임상시험 성공 여부를 두고 여러 오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자본시장 전문가로 꼽히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약개발 미래가치에 바탕을 둔 바이오기업에 대한 평가 및 공시 제도는 평가를 받은 후 증권사들의 분석이 거의 없고 임상개발에 대한 공시는 대부분 회사의 셀프 공시에만 의존해 일반 투자자 위험도가 너무 크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임상개발에 대한 독립된 지정 전문기관 평가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특례상장의 역습…84개사 코스닥 입성
현 기술특례상장(특례상장) 제도도 문제를 키웠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기술력과 성장성을 평가해 상장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바이오업체의 질적 경쟁력과 건전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옥석(玉石)이 구분되지 않고 무분별한 상장이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특례상장 제도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산업은 바이오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0년까지 바이오 기업 84곳이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같은 기간 비(非)바이오 기업은 24곳이다. 2016년 이후로 범위를 좁히면 특례상장 85건 중 70%(60건)가 바이오다.

1호 특례상장회사인 헬릭스미스는 본업인 신약 개발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사모펀드 등에 2500억원을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고 퇴출 위기에 몰렸던 게 대표적 사례다.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큰 코스닥 시장에 상장되면서 주가 부양에 매달릴 수밖에 업게 된다는 구조적 맹점도 지적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은 실패 가능성이 높은데, 1~2개 아이템(신약 후보물질)을 가지고 공모 시장 투자자들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상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니, 이를 은폐하거나 본업과 관련 없는 기업 등을 사들이는 행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바이오 산업에서 유독 신약 개발 업체들에서 문제가 불거진 데에는 현재 제도의 허점도 한몫했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거래소도 사업성 평가를 강화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섰다. 지난해까지는 기술성 4개 분야, 사업성 2개 분야 등 총 26개 항목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올해부터 기술성 3개 분야, 사업성 3개 분야 등 총 36개 항목을 평가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상장 기준만 강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한 관계자는 "문제는 특례상장업체 중 끝내 사업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곳"이라며 "해당 업체에 대한 원활한 상장폐지 프로그램이 없으면 진입 장벽을 조금 강화해도 문제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자들의 묻지마 투자 행태를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바이오산업에서 오랫동안 투자펀드를 운용해온 운용역은 "공시제도에 허점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신뢰할만한 기업이 어디이고, 그 기업의 연구개발과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명확히 알려준다"며 "이런 기업을 놔두고 대박이 날 거라는 기대에 복권 사 듯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면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고위험 고수익 투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더 위험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벤처캐피탈(VC)과 사모펀드(PEF)까지 바이오 투자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상당수가 바이오 기업들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투자에 나설 때 투자 대상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신약 개발 바이오 분야는 워낙 전문적이기도 한데다 국내에서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PEF가 정확히 알아보고 투자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임상 관련한 데이터는 바이오 업체 측에서도 확정되기 전에 명확하게 공개를 하지 못해 정보 얻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임상 이슈가 있는 바이오 업체에 투자한 PEF도 회사 측이 내놓은 공시 등에만 의존해 투자에 나서게 된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기관이 바이오 업체에 투자하게 되면 개인 투자자들은 해당 바이오 업체를 ‘믿을 만한 투자처’라고 생각한다"라며 "기관만 보고 들어온 개인 투자자들은 나중에 바이오 업체 주가가 내려갔을 때 속수무책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바이오에 전문화된 인력과 분석능력을 갖춘 PEF가 중심이 돼서 바이오 투자를 주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익명을 요청한 한 PEF 관계자는 "바이오 전문 운용역 등이 있지 않은 이상 바이오 업체 잠재력을 완벽히 파악해 투자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라며 "수익이 제일 우선시되다 보니 당장 주가가 오르면서 수익 실현이 쉬운 바이오 업체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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