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오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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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에서 음력 설은 가족들이 모여 앉아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홍콩에 사는 스테파니 응에게 이 날은 그저 고통스러운 날일 뿐이다.
스테파니는 16살 때 거식증 진단을 받았다.
왜곡된 신체 이미지나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과도한 다이어트 등으로 인한 정신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거식증은 섭식 장애의 하나다. 대개 극심한 체중 감량으로 이어진다.
스테파니는 "먹는 것에 대한 제 걱정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며 지난 설 명절을 회상했다.
"음식이 너무 많았어요. 온통 짜고, 달고, 바삭한 음식들이었죠. 제가 본 서구 언론에서는 자신이 먹는 모든 음식을 잘 살펴보고 또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죠."
이런 경험을 한 여성은 비단 스테파니뿐만이 아니다. 홍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섭식 장애를 겪고 있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2015년 영국의 정보분석그룹 유고브(You Gov)와 여성재단이 홍콩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9명이 자신의 체중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전역에 걸쳐 번지고 있는 섭식 장애 문제는 이제 중대한 공중 보건 문제로 떠올랐다.
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 여대생들의 섭식 장애 문제는 미국 등 일부 서구 국가들에서 보고된 것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섭식 장애가 늘어나는 건 여성 취업률 증가와 여성 가장의 증가 등 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겪고 있는 중요한 변화의 영향이 크다.
전문가들은 소비력 증대와 소비자 중심 문화의 확산이 신체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제고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 문화적 규범이나 가정 내에서의 압박도 음식에 대한 태도나 감정적 집착을 형성한다.
말레이시아의 임상 심리학자 추아 숙 닝 박사는 "이러한 사회적 이벤트들이 섭식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스테파니가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과도 일치한다. 그는 '여성은 항상 날씬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받아 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와 동시에 중국에서는 명절날 윗사람과 초대해준 사람 등에게 공경을 표하기 위해 식사를 깨끗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문화적 압박도 존재한다.
스테파니는 "이렇게 상충되는 기대들이 젊은 중국 여성들의 식습관이나 신체 이미지에 대한 자각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좀 더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최근 관련 이론을 펴냈다.

Stephanie Ng
그는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섭식 장애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자각해 온라인 블로그를 개설했다. 이 블로그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하며, 그들이 자신의 신체를 재정의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섭식 장애가 가져온 신체 변화
"청소년 때, 저는 중국의 음식 문화를 거부했어요. 하지만 이후에는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제 정체성을 서서히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죠."
스테파니는 섭식 장애 진단을 받기 전에는 무조건 좋은 것만 먹어야 한다는 건강 식품 탐욕증이 있었다고 말했다.
'건강 식품 탐욕증'은 아직 정신 질환으로 규정되진 않았지만 음식을 먹을 때마다 건강식을 따지며 가려 먹는 것을 일컫는다. 이러한 식습관은 음식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이나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 죄책감마저 느끼게 한다는 게 스테파니의 설명이다.
가족들이 그의 새로운 식습관에 대해 우려를 표할 때면 그는 '우월감'마저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일종의 반란 같은 거죠. 당신들이 '더는 나를 통제할 수 없을 거야' 같은 느낌이요."
그러나 이러한 과거 식습관은 그의 몸에 분명한 문제를 가져왔다. 월경이 완전히 멈춘 것이다.
"맹목적으로 계속 살을 빼려고 했고 결국 이렇게 됐어요. 매번 체중을 잴 때마다 '이게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음식에 대한 공포
스테파니는 엄마가 홍콩 섭식장애협회가 만든 거식증 체크리스트를 가져온 날을 기억한다.
"둘이 같이 앉아서 모든 항목에 체크 표시를 해야 했어요. 적막이 흘렀고 엄마는 말을 아꼈죠."
엄마의 지원으로 그는 도움을 받게 됐다. 이른바 '다시 먹는 기간' 동안 그는 운동을 하는 것도 금지됐다. 회복 기간 수차례 기복을 겪기도 했다. 미국 대학에서 보낸 첫 학년 때는 병이 재발했다.
수년간 섭식 장애와 씨름해 온 그는 이제 설 명절이 와도 음식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됐다.

Stephanie Ng
"예전엔 밥을 먹으면 그만큼 운동을 더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식사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여기에 가족이라는 개념, 즐거움, 기쁨이 포함돼 있다는 걸 알아요. "
스테파니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여전히 많은 중국 여성들이 아시아의 전통 문화와 이상적인 신체 기준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제가 만난 한 여성은 이런 얘기도 했어요. 어릴 때 밥 공기를 깨끗하게 비우지 않으면 나중에 커서 못난이와 결혼할 거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고요.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로 우리의 식습관과 연결되고 공포심을 주입하죠."

Stephanie Ng
하지만 문제는 비단 가족 내 압박만이 아니다. 스테파니는 소셜 미디어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몇 년간 중국에서는 폭식하고 구토하는 것에 대한 온라인 토론장이 수차례 열렸다. 여성들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도 몸이 아파서 자연히 살이 빠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공유했다.
거식증 치료를 하고 관련 연구를 하면서 스테파니는 자신의 섭식 장애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음식에 감정적 의미를 부여해 왔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스테파니는 진단을 받고 미국에서 학업을 하는 동안 추가적인 치료를 병행했다. 그러나 아시아의 의학 전문가들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여전히 부족하며, 치료가 절실한 수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진단도 지원도 받고 있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신체에 관한 농담'
스테파니는 이 같은 지원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상태 회복에 앞서 새로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학생일 때 개설한 '신체 농담'에 관한 온라인 블로그는 이제 비영리단체로 성장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블로그는 '신체 농담' 관련 국제 앰배서더 공동체를 창단해 신체 이미지와 정신 건강에 관한 지역 내 의식 향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Stephanie Ng
앰배서더들은 블로그에 글을 쓰고 팟 캐스트를 진행하며 대학과 일선 학교에서 그룹 토론을 추진한다. 이들은 젊은이들이 여지껏 금기시 됐던 것들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블로그는 뚜렷한 국제적인 야심을 갖고 있다. 섭식 장애에서 비롯된 심오한 도전은 이제 캠퍼스를 넘어 아시아 전역의 가정에까지 퍼지고 있다.
'떠도는 유령'
줄리아 윤은 자신의 딸이 거식증 진단을 받았을 때, 그동안 자신이 여러 징후들을 그냥 지나쳐 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내려 앉았다. 그가 이후 런던에서 섭식 장애 상담가 교육을 받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어린 여성들을 돕는 길을 걷고 있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섭식 장애가 뭔지 몰라요. 평소 식습관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거식증인 경우도 있죠."
줄리아는 학교를 대상으로 섭식 장애에 대한 의식 제고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모가 10대 자녀들의 섭식 장애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법에 관한 영문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마무리했다.
"부모들은 종종 자책을 하곤 해요. 이 책은 제게 자책 대신 어떻게 하면 딸을 도울 수 있는지를 알려줬어요. 공감과 인내 같은 것들이요."

Julia Yoon
그러나 그 여정에는 분명 고통의 순간도 있었다.
한국 엄마로서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느끼는 강박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딸이 다니고 있던 발레 학원에서 아이가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아이들끼리의 경쟁이 심했던 발레 학원에서 딸은 매일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몸무게를 쟀다. 학원은 아이들에게 매일 아침과 저녁엔 현미밥 세 스푼, 그리고 점심엔 샐러드를 먹도록 권장했다.
그는 "우리가 서구의 미의 기준을 무작정 따르려고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줄리아가 무용 학원 원장에게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한국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키가 작기 때문에 키가 큰 서구 무용수들보다 살을 더 빼야 한다"는 것이었다.
5년 후, 딸은 무용 학원을 그만뒀지만 상처는 남았다. 오랜 기간 식단 조절을 해왔던 딸이 폭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폭식 또한 섭식 장애의 일종으로 대개 음식으로 체중 조절을 하는 경우 이에 대한 죄책감을 갖는 특징을 보인다.
부모로서 한국 내 전문가를 찾아나섰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이 분야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는 제가 알기로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전문가를 찾아 헤매는 사이, 딸은 결국 신경성 식욕 부진증인 거식증 진단을 받았고 약과 식사 조절 처방을 받았다.
"아직도 그 장면이 생각나요. 저희 부부가 딸과 소파에 앉아 무릎을 꿇고 울었고, 딸 아이는 걸을 힘도, 일어설 힘도 없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눈물을 흘렸죠. 아이는 너무 수척해져서 마치 집안을 떠도는 유령 같다는 얘기까지 남편이 할 정도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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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과 재발
전문가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줄리아 부부는 딸을 데리고 해외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가족 중심의 치료법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 샌디에고 대학 섭식장애센터에 딸을 데려 갔다.
"그곳에서는 영양사, 소아과 의사, 전문 치료사,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그리고 다른 전문가들이 모두 함께 일하고 있었어요. 이 사실에 매우 영감을 받았죠."
그러나 미국에 도착했을 때, 딸은 심박률이 약해지는 서맥 증상을 겪었고, 13일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결국 퇴원을 하고 나서야 센터에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 달 넘게 미국에 있으면서 그들은 센터에서 딸의 회복을 위한 치료법을 완전히 익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관리 감독 없이 혼자 먹거나 운동하지 않기와 같은 수칙을 꾸준히 하고 나서야 딸은 53kg의 목표 체중을 달성했고 멈췄던 생리도 다시 시작됐다.
한국 무용 학원이 무용수의 신체 이미지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생각에, 줄리아는 프랑스 파리에서 온 개인 무용수에게 딸의 무용 수업을 맡겼다.
그는 딸이 서서히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미국에 있는 무용 대학에 지원하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 줄리아는 영국 국립 섭식장애센터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갔다. 스스로 딸에게 정신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딸의 삶은 미국에서도 쉽지 않았다. 무용수가 되기 위한 꿈은 좌절됐고, 또다시 병이 재발했다. 심사숙고 끝에 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우울감에 빠진 딸은 또다시 폭식을 시작했고 초기에 겪은 난관들로 가득찬 고통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줄리아는 한국에 있는 다양한 활동과 수업에 딸을 등록시키며 그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아이가 남을 돕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천성이 있는데, 그게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처음엔 동네 교회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고 미술도 계속했다. 그리고 심리학에도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줄리아는 이제 자신의 딸이 '기대 이상의 새로운 삶으로 피어나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의 딸은 앞으로 뉴스 앵커나 심리학자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섭식 장애는 매우 교묘하고 가족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요. 고통스러운 여정이었지만 분명 우리를 성장하게 했고 가족을 하나로 모이게 했죠."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 줄리아와 스테파니는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몇 안 되는 새로운 섭식장애센터도 문을 열었고, 줄리아는 지난 몇 주간 실전 상담을 진행했다. 그의 딸은 현재 한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며 엄마의 일을 돕고 있다.

Julia Yoon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외모에 신경을 쏟으며 자신의 식습관을 자꾸 비교하곤 해요. 저는 그런 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스테파니는 정신 건강에 전염병 대유행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있다.
"섭식 장애는 결국 통제에 대한 것이에요. 그리고 전염병 대유행 하에서는 누구도 미래의 일을 예상하지 못하죠.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자신의 식습관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모두 이러한 대화를 계속해 나가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면서, 섭식 장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일러스트: 데이비스 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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