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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착된 사고 벗어야 문제해결 가능성 커… 때론 목표서 멀어져야 답 보여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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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권호영 기자

■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16) 문제를 보는 마음

배운 적 없는 새로운 문제를 만났을 때… 새로운 표상 만드는 게 해결에 도움
성공 경험 통해 얻은 ‘문제 접근법’은 해결에 도움 되지만 효과적 해결 방해하기도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은 크게 두 가지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수능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답이 있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 중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고, 해결되기 전까지는 해결 가능성을 알 수 없는 문제들도 있다.

여러분 앞에 ‘그림 1’과 같은 가로 8칸, 세로 8칸의 64개 정사각형으로 된 판이 놓여 있다고 하자. 그리고 같은 크기의 정사각형 두 개로 된 타일 조각이 32개 있다. 이 타일을 깨지 않고 회전하거나 움직여 64개 정사각형 판에 모두 덮을 수 있는가? 대부분의 독자는 쉽게 ‘그렇다’는 정답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개의 정사각형이 사라진 ‘그림 2’와 ‘그림 3’의 경우는 어떠한가? 31개의 타일 조각으로 사라진 칸을 제외한 나머지 62개의 칸을 모두 덮을 수 있을까? 더 읽기 전에 이 문제를 먼저 풀어보고 대답을 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해 보라.

이런 문제를 처음 본 독자라면 이리저리 가상의 타일 조각을 그려보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잘 안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31개의 타일 조각으로 62개의 정사각형 칸을 모두 덮는 것이 우리의 목표 상태라면, 어떤 문제는 이 목표 상태로 갈 수 없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 가능한 것인지 혹은 해결 불가능한 것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시간과 노력 등 제한된 자원을 해결 가능한 문제에 좀 더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62개의 정사각형을 타일로 채우는 문제는 과거 인지심리학자들이 연구에 사용한 바 있는 ‘귀 없는 체스판 문제’에서 필자가 변형시킨 문제다. ‘그림 4’와 같이 64개의 정사각형으로 이뤄진 체스판에서 양쪽 대각선 모서리에 있는 칸 2개를 제거해 총 62개의 정사각형으로 된 이 ‘귀 없는 체스판’을 31개의 타일로 모두 덮을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었다면, 앞의 ‘그림 2’와 ‘그림 3’의 문제를 체스판이라 상상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스판에서 하나의 타일로 덮을 수 있는 체스판 영역은 반드시 색이 다른 인접한 두 정사각형이어야 한다. 하지만 없어진 대각선 양 귀퉁이의 정사각형은 같은 색이고, 따라서 남은 체스판에서 어떤 색은 모두 30개고 다른 색은 32개가 돼 31개의 타일로 이들을 모두 덮을 수가 없게 된다. 마치 남자 30명과 여자 32명으로 남녀 31쌍을 만들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림 2’와 ‘그림 3’은 각각 ‘그림 5’ ‘그림 6’과 동일한 모양이다. ‘그림 5’를 보면 같은 색 정사각형 2개가 없는 상태라서 흰색과 주황색을 동시에 덮는 타일로는 이 체스판을 모두 덮을 수 없다. 반면 ‘그림 6’은 흰색과 주황색 정사각형이 하나씩 없는 상태이므로 타일로 두 색의 짝을 맞춰 모두 덮을 수 있다.

‘그림 2’와 ‘그림 3’을 보면서 체스판 무늬를 상상하거나 혹은 상징적인 구분(예를 들면 ‘그림 7’과 같이 남, 여를 표시)을 만들어 표상한다면 이 문제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주어진 문제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표상을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이전에 배운 적 없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개인적·상황적 요인들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앞서 체스판 문제는 문제를 어떻게 표상하고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중요함을 보여주는 예다.

이제 다른 문제를 한번 풀어보자.

다음은 한글 글자의 초성 순서인데, 빈칸에 들어갈 초성은 무엇일까?

ㅇㅇㅅㅅㅇㅇㅊ( )( )( )

이 초성 퀴즈를 처음 보는 독자는 괄호 안에 넣을 적당한 초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ㅍ)(ㄱ)(ㅅ)-을 알고 나면(‘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의 초성), 다음 초성 퀴즈는 좀 더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다.

ㅇㅎㅅㅁㄱ( )( )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일주일에 몇 개의 요일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두 번째 문제를 첫 번째 문제보다 쉽게 풀었다면,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할 때의 마음 갖춤새(mental set:어떤 대상이나 문제를 특정한 방식으로 보거나 접근하는 경향성)를 가지고 두 번째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 성공했던 문제 해결 경험이 마음 갖춤새를 형성한 것이다.

마음 갖춤새와 관련한 고전적인 인지심리학 실험(1942년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루친스 Abraham S Luchins의 연구)을 하나 소개하겠다. 독자들도 직접 해 보기 바란다.

여러분에게 크기가 다른 물통 세 개(A, B, C)가 있다(표 참조). 아래에 각 물통의 용량과 원하는 물의 양이 표시돼 있다. 물통은 비어 있고, 물통에는 어떤 눈금도 없이 가득 채웠을 때의 총 용량만 알 수 있다. 여러분은 수돗물로 얼마든지 물을 받을 수 있고, 각 문제에서 원하는 물의 양을 얻기 위해 이 물통들을 사용할 수 있다. 각 문제에서 어떻게 원하는 양의 물을 얻을 수 있는지 하나씩 풀어보기 바란다.

여러분이 이 문제를 풀었다면, 처음 한두 문제를 해결할 때는 시간이 좀 걸렸겠지만, 그 이후에는 점점 시간이 빨라졌을 것이며 계속된 문제들이 B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나서 A 물통에 한 번 따라 버리고 나머지는 C 물통에 두 번 따라 버리면 원하는 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즉, 원하는 양=B-A-2C). 문제 끝까지 이러한 공식을 사용하면 원하는 양을 얻을 수 있긴 하지만, 만일 마지막 문제까지 이렇게 문제를 해결했다면 여러분은 마음 갖춤새의 부작용을 경험한 것이다. 실제로 루친스의 실험에 참여한 대학생들도 마지막 두 문제는 A-C, A+C로 쉽게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 여전히 이전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후속 문제들은 앞선 방법으로는 풀 수 없고 더 쉬운 방법으로 풀 수 있는데도 어려운 방법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하기까지 했다.

마음 갖춤새는 문제 해결 방식에서 우리의 이전 경험이나 사전지식을 이용하는 일종의 하향적(top-down) 처리가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음 갖춤새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루친스의 실험 결과처럼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방식을 놓치게 하기도 한다. 우리의 기존 경험이나 지식, 혹은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 때로는 새롭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못 보고 지나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간에 많이 알려진 ‘9개의 점 문제’도 대표적인 예인데, ‘그림 8’에 있는 평면상의 9개 점을 모두 지나가는 직선을 펜을 떼지 않고 한 번에 그리되 직선은 4개만 허용되는 문제다. 독자들도 한번 시도해 보기 바란다(정답은 용어설명 아래).

이 문제를 처음 보고도 풀었다면 당신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이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직선을 그릴 때 9개의 점으로 구성된 정사각형을 벗어나 직선을 그리면 안 된다는 스스로의 제약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지적 제약’이나 고착된 사고에서 벗어나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커진다. 직선이 9개의 점으로 구성된 정사각형을 벗어나야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경우 약 40%의 일반인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구체적 지시를 주지 않고 우리 뇌에서 인지적 제약을 담당하는 영역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2012년 호주 시드니대의 인지신경과학인 치와 스나이더(Chi & Snyder)의 연구에서 ‘9개의 점 문제’를 처음 본 일반인들은 모두 문제 해결을 못 했지만, 하향적 통제나 인지적 제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뇌의 전측두엽에 약한 전류를 흘려 그 기능을 억제한 집단의 경우에는 33명의 참가자 중 14명(42%)이 이 문제를 푼 것으로 나타났다. 역설적이게도 정상적인 뇌의 특정 부위를 비활성화시키는 것이 창의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뇌 영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영화 ‘레인맨’의 등장인물처럼 서번트 증후군이나 조현병(정신분열병)과 같은 정신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우리에게는 통찰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문제들도 있고, 기억된 지식과 논리를 이용해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비통찰적 문제들도 있다. 문제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표상하고(상징이나 이미지 등), 알고리즘이나 어림법, 유추 등 다양한 문제 해결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문제들은 목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목표 상태로부터 멀어질 것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많은 연구는 우리가 그런 문제들에 취약함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고 계속 오르기만 하면 되는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은 산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 낮은 산이 있다면, 우리는 낮은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야만 한다.

즉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내려가야 할 수도 있고, 중간에 장애물이 있다면 목표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길을 택해야 할 때도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마음 갖춤새(mental set) : 어떤 대상이나 문제를 특정한 방식으로 보거나 접근하는 경향성을 뜻하는 인지심리학 용어다. 일반적으로 과거에 성공했던 문제 해결 경험이 마음 갖춤새를 형성한다. 현재 상황에 더 적절한 방식이 있는 경우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기능 고착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1942년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루친스가 이와 관련한 유명한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마음 갖춤새가 인종·성별·종교 등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이어지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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