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번의 대책에도 잡히지 않는 집값. 부동산에 쏠린 국민적 관심은 부동산을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 세웠다. 하지만 이런 갈등과 무관하게 미래산업으로서 부동산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이 합쳐진 프롭테크 산업에 뛰어든 이들이다. 4~5년 전부터 국내에서 싹을 틔운 프롭테크는 1세대(네이버 부동산, 부동산114 등 온라인 매물서비스), 2세대(직방·다방 등 모바일 부동산서비스)를 거쳐 인공지능(AI)과 데이터로 무장한 3세대로 진화 중이다.
2018년 10월 출범한 한국프롭테크포럼은 회원사 수만 200개가 넘는다. 이들에게 투자된 금액은 누적 1조 3600억원. 조인혜 사무처장은 "스타트업뿐 아니라 개발사·건설사·신탁사·금융사 등 다양한 주체들이 모였다"며 "해외보다 4~5년 늦었지만, 앞선 국내 IT 기술력을 기반으로 급성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3세대 프롭테크 기업 스페이스워크·빅밸류 두 회사의 대표를 만났다.
주소만 넣으면 1초 만에 최적 건물 뚝딱
'1층에는 카페, 2~3층은 원룸을 만들어 임대하고, 4층은 내가 살면 좋겠다'
길을 걷다 낡은 주택을 보고,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스페이스워크의 서비스 '랜드북'의 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주소만 넣으면 AI가 알아서 개발 후 건물을 설계해주고, 개발에 드는 가격과 임대 수익까지 한 번에 분석해 준다.
스페이스워크는 대지 활용 극대화 방법을 찾는 프롭테크 회사다.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인 조성현(37) 대표가 2016년 8월 설립했다. 조 대표는 건축가들에겐 '사업가'로 사업가들에겐 '건축가'로 불린다. 2018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동시에 프롭테크 분야 혁신사업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조 대표는 "건축가로 일하며 공간과 개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소규모 토지를 효율적으로 개발하면 신도시나 재개발 없이도 여러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스페이스워크의 랜드북은 AI를 기반으로 부동산 가치를 평가한다. 개발 관련 법규·대지의 물리적 여건을 분석해 최적의 건축물을 설계한다. 또 주변 시세를 분석해 개발 후 수익을 예측해 준다. 조 대표는 "현재는 설계 전까지는 시행사조차도 수익이 얼마나 나올지 정확히 모른다"며 "랜드북으로 사전 검토를 자동화하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개발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건축설계 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하다. 스페이스워크는 구글의 바둑AI 알파고 제로와 같은 심층강화학습(Deep Reinforcement Learning) 방식을 통해 자동설계 시스템을 구축했다. 알파고가 바둑의 규칙을 알려주면 스스로 학습하듯, 건축에 필요한 규칙을 알려주고 수십 개 땅에 건물을 지어보며 학습하는 식이다. 사용자는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을 정하면 된다. ▶최대 면적 ▶최대 임대수익 ▶최대 채광률 등 조건을 지정하면 AI가 적당한 건물을 설계하고 세부 건축 비용, 임대 수익 등을 도출해 낸다. 조 대표는 "한번 학습 후에는 실시간으로 조건에 맞는 설계가 가능하다"며 "건축법규가 바뀌면 규칙을 업데이트하면 되고, 다른 나라의 규칙을 입력하면 해외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스페이스워크의 기술은 공공 개발분야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간 가로주택정비사업(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은 주민들이 사업 추진을 원해도 검토 비용 문제나 개발후 기대수익의 불명확성 때문에 시행이 어려웠다. 하지만 AI로 개발 후 모습과 사업성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미 서울주택도시(SH)공사, 경기 도시공사, 인천 도시공사 등은 랜드북 가로주택설계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사업 검토 및 주민소통에 활용하고 있다.
스페이스워크의 다음 목표는 토지 거래 플랫폼 진출이다. 조 대표는 "중개인이 토지(건물) 매물을 등록하면 개발 후 평가보고서를 즉각 만들어, 소비자가 검토후 매입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준비 중"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토지 평가·중개·개발 전 영역에 AI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만 집인가? AI가 빌라·다세대·연립 시세 측정
프롭테크 스타트업 빅밸류의 김진경(44) 대표는 "한국은 부동산 시장 판단이나 정책수립이 아파트 중심"이라며 "연립·다세대 주택에 사는 절반의 국민은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 대출이 대표적이다. 아파트는 대출이 쉽지만, 연립·다세대 주택은 다르다. 은행에서 '대출이 얼마가 나올지 모른다'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담보물의 정확한 시세 측정이 쉽지 않아 대출이 어렵고, 대출을 받아도 가치가 저평가되는 편이다.
빅밸류는 부동산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연립·다세대 주택·나홀로아파트(50세대 미만)의 가치를 자동 산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면적·사용승인일·층수·건축자재·주차장·엘리베이터 등 각종 주택 정보를 취합한 후 주변 유사 건물의 실거래가 100~150개와 비교 분석해 가격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감정평가를 개별적으로 받아야 했던 연립·다세대 주택의 시세를 즉각 확인할 수 있다"며 "은행이 빅밸류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서민 대출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빅밸류의 가치는 부동산 업계보다 금융권에서 먼저 알아봤다. 부동산에 대한 담보가치 산정 서비스를 수행하는 금융위원회 지정대리인에 2018년부터 1~3차 연속으로 선정된 것. 지정대리인은 금융당국의 승인 하에 대리인이 금융기관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할 수 있는 제도다.
빅밸류는 지정대리인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8월 KEB하나은행, 올해 3월 SBI저축은행, 웰컴저축은행과 은행담보가치산정 업무 위탁계약을 정식 체결했다. 김 대표는 "시중 은행뿐 아니라 뱅크샐러드·어니스트펀드 등 15개 금융기업이 빅밸류의 시세정보를 이용 중"이라며 "보수적인 은행이 핀테크 가능성에 눈을 뜨며 상용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산업과의 갈등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감정평가사협회가 지난 5월 말 김 대표와 빅밸류를 ‘감정 평가 및 감정평가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감정평가업자가 아닌데도 부동산 가격을 추산하는 것은 유사 감정 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김 대표는 "지난해 6월 규제샌드박스로 선정 된 터라 우리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며 "건별로 의뢰받는 감정평가사의 업무와 AI가 분석하는 대량의 원천데이터를 공개하는 빅밸류의 사업은 완전히 분야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빅밸류의 서비스는 감정평가사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공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July 18, 2020 at 06: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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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부동산문제, AI가 해결" 진화하는 프롭테크 스타트업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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