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배경
미국연방대법원은 2021년 6월 28일 Gavin Grimm이라는 이름을 가진 트랜스젠더 남학생에 대하여 남학생 화장실 사용을 금지한 글로스터(Gloucester) 고등학교의 정책에 관한 상고심재판을 허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원심인 제4연방항소법원은 그러한 학교의 정책이 부당한 차별이라는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이로써 Grimm은 6년여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를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는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이 화장실이나 라커룸, 샤워실 등 성별을 구분한 편의시설을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지의 문제에 관하여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트랜스젠더 화장실 권리(Transgender Bathroom Right)'라는 명칭의 논쟁이기도 하다. Gavin Grimm은 원래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고등학교 진학 이후부터 자신을 남성으로 소개하기 시작하였으며, 학교에서도 남학생 화장실을 사용하였다. 학교는 처음에 남학생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였으나, 다른 학부모들이 학교 이사회에 민원을 제기하자 이사회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성(birth or biological sex)과 일치하는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하고 트랜스젠더 학생은 학교 내 3개의 성중립화장실(unisex bathroom)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Grimm은 이러한 학교 이사회 정책이 공립학교 내에서 성별에 기한 차별을 금하고 있는 연방교육법과 연방헌법의 평등보호조항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면서, 2015년 6월 16일 손해배상청구와 사전구제명령을 구하는 소를 버지니아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하였다.
2. 소송의 쟁점
미국의 1972년 연방교육법(이하 'Title IX')은 연방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는 학교들이 학생들을 '성별에 따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성별(sex)'의 의미가 단순히 남녀의 구별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의 성정체성(gender identity)까지 포함하는 의미인지가 소송의 쟁점이 되었다. Grimm은 소송을 통해 성중립화장실을 사용하게 되면서 '낙인감과 고립감'을 경험하였다고 토로하였다. 성중립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자신이 어느 한쪽 성에 소속되지 않는 성소수자임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변을 참기 시작하였으며, 이로 인해 요로감염에 시달리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교육부는 2015년 1월 7일 일선 공립학교들에 Title IX과 그 시행령 34 C.F.R. §106.33에 대한 유권해석을 담은 행정공문을 보낸 바 있는데, 해당 공문은 "학생들을 성별로 구분하여 대우하는 경우 그들의 '성정체성에 맞게' 대우해야 한다"는 취지로 되어 있었다.
3. 1심 법원의 중간판단[132 F.Supp.3d 736 (E.D.Va. 2015)] - 원고 주장 기각
1심 법원은 행정청 유권해석 존중의 원칙(Auer deference)의 적용을 거부하고 학교 정책은 Title IX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하면서 Grimm의 사전구제신청을 기각하였다.
Title IX은 금지되는 성별에 따른 차별이 허용되는 경우로 '성별에 따라(on the basis of sex) 구분된 생활시설'을 들고 있으며, 생활시설 구분의 기준인 성별(sex)에는 생물학적 성별(biological sex)이 명백히 포함되므로, 교육부의 행정해석은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서 Auer deference를 적용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이유였다. 수정헌법상 평등보호 조항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4. 항소심 법원의 판단[822 F.3d 709 (4th cir. 2016)] - 금지되는 차별이라고 판단
그러나 Grimm의 중간항소(interlocutory appeal)로 진행된 항소심(제4연방항소법원)은 1심 법원이 행정청 유권해석 존중의 원칙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항소법원은 해당 규정이 명백하지 않고 모호성을 지녔으므로 교육부 행정해석의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시행령인 34 C.F.R. §106.33은 "하나의 성별(one sex)에 제공되는 시설은 반대 성별(the other sex)의 시설과 동등한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one sex와 the other sex의 의미가 남성과 여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성구별 화장실 사용에 있어 트랜스젠더를 남성으로 볼지 여성으로 볼지'에 관하여는 법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5. 연방대법원의 판단[137 S.Ct. 1239] - 환송
학교 측의 상고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허가되었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내려진 유권해석을 철회한다는 공문을 2017년 2월 22일 시행하자, 연방대법원은 새로운 행정공문에 따라 다시 재판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6. 재개된 1심 판단[302 F.Supp.3d 730] - 부당한 차별로 인정
1심 법원의 새 재판부는 기존의 중간판결을 뒤집고 입장을 변경하여 학교의 정책이 원고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라고 판시했다. Title IX 위반과 관련하여, 법원은 여성이 남자 같은 외모를 하고 남자처럼 행동하였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건에서 직장 내 '성 고정관념 강제(gender stereotyping)'는 차별이라고 판시한 Price Waterhouse v. Hopkins 판례를 인용하면서, 생물학적 성에 따라서만 시설을 사용할 것을 강제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성 고정관념 강제'에 해당하는 차별이라고 판시하였다. 법원은 평등보호조항 위반 여부와 관련하여서도, 이는 성차별의 문제로서 강화된 심사기준(heightened scrutiny)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학교의 정책은 트랜스젠더 학생들을 부당히 차별하고 있어 수정헌법 상의 평등보호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7. 두 번째 항소심의 판단[972 F.3d 586 (4th Cir. 2020)] - 1심 유지
학교 측에서 다시 항소하여 심리가 계속되는 동안 성소수자 차별에 관하여 이정표가 될 만한 연방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 연방대법원은 2020년 6월 15일 Bostock v. Clayton County 사건에서 원고가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다음 그를 직장에서 해고한 행위를 고용에서의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1964년 민권법(이른 바 Title VII) 위반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항소법원은 이러한 Bostock 판결이 학교 내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하고 있는 Title IX의 해석에 지침을 준다고 보았다. 항소심 법원은 Bostock 판결을 원용하여, 트랜스젠더 남학생에게 남학생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Title IX 위반이라고 판시하였고, 평등보호조항 위반이라는 1심의 판단도 긍정하였다. 이 판결에는 학교 측이 다시 항소하였으나, 대법원은 상고를 허가하지 않았다.
8. 판결의 의의
이 소송의 진행을 전후하여 유사한 하급심 재판들이 줄을 이었다. 이 소송 이전에 Johnston v. Univ. Pittsburgh 사건(2015, 펜실베이니아서부 연방지방법원)은 화장실을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구별하도록 한 학교의 정책이 Title IX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반면, Whitaker v. Kenosha Unified School District(2017, 제7연방항소법원), Doe v. Boyertown Area School District(2018, 제3연방항소법원), Dallas High School parents v. Dallas School District(2020, 제9연방항소법원), Adams v. The School Board of St. Johns County,Florida(2020, 제11연방항소법원) 등은 모두 트랜스젠더 남학생에게 남학생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Title IX과 수정헌법의 평등보호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현재 미국 법원은 대체적으로 트랜스젠더 남학생들에게 남학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상판결은 트랜스젠더임을 이유로 한 해고가 민권법에 위반되는 성차별이라고 판단한 연방대법원의 Bostock v. Clayton County 판결을 교육법(Title IX)의 해석에까지 확장한 최초의 사례인데, 이후 Adams 판결 역시 Bostock 판결을 원용하여 같은 취지로 판시하는 등 현재 미국 법원 실무는 트랜스젠더의 성정체성에 따른 시설 이용권리를 점차 인정하고 있는 추세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최근 서울행정법원도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판단한 바가 있다(2021. 6. 10. 선고 2019구합89043 판결).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이 문제에 관한 논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동현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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