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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깬 영상 신년사에서 고객 불만 전했던 구광모 LG회장, 과연 문제 해결됐나 - 조선비즈

입력 2020.12.20 06:00

매년 새해가 밝으면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저마다 시무식을 열고 임직원들에게 한해 회사 경영 방향을 담은 신년사를 전한다. 올해 초 LG그룹은 시무식을 없애고 구광모 회장의 새해 영상 편지를 전세계 직원 25만명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한정된 임직원 수백명이 강당에 모여 총수의 훈시를 듣는 방식이 아닌, 직원들이 모바일과 PC로 구 회장의 영상 편지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룹 안팎에선 신선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2주 앞으로 다가온 2021년 새해에도 구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영상 편지로 신년사를 전할 예정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훈화 격의 신년사 대신 실제 고객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구 회장의 올해 초 영상 편지는 회사 내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LG 관계자는 "올해 영상에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고객 우선’을 강조했듯, 내년에도 구 회장은 영상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실용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2일 전세계 LG 직원들 메일로 전달된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영상 신년사. /LG그룹 제공
직원들로부터 "시무식보다 훨씬 실용적"이라는 평을 받은 올해 신년사 영상을 보면 구 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해 ‘고객’을 강조했다. 새해 인사에 앞서 LG 제품을 써본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을 전한 것이다. 구 회장은 "고객들의 말씀을 하나하나 들으면서 올 한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고 느꼈다"면서 "모든 것은 고객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상에서 소개된 고객들의 불만은 △LG전자의 식기세척기 외관에 디스플레이가 없어 세척 시간 확인이 어렵다 △LG전자의 인덕션 화구 3개를 동시에 최대치로 놓고 사용할 수 없어서 불편하다 △LG하우시스의 이중창 안쪽에 얼룩이 남아있다 △LG유플러스 인터넷 전화가 끊겨 문의했는데도 이후 연락이 없다는 것 등이었다. 이를 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회장이 신년사에서 자사 고객들의 구체적인 불만 사항을 언급하며 개선을 강조한 것은 신선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영상 편지가 전세계 임직원들에게 전달된 지 1년이 지나가는 현재 각 계열사는 구 회장이 신년사에서 지적한 문제를 대부분 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LG전자는 식기세척기의 잔여 시간 확인 문제와 관련해 "국내 고객의 경우 실제 사용시 편의성을 중시한다는 페인 포인트를 신제품에 반영했다"며 "올해 9월 나온 신제품에서는 세척 잔여 시간이 나오는 디스플레이를 적용했고, 동시에 앱을 통해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인덕션 화구 화력 문제에 대해서는 사용설명서 내에 별도 항목을 만들어 ‘국내 모든 전기레인지는 일반 가정집 콘센트 허용전력인 약 3300W(와트)를 넘어갈 경우 자동으로 일부 화구의 출력을 낮춰 작동하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을 보강하고, 고객 상담 가이드에도 이 같은 내용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LG하우시스 역시 "이중창 얼룩 문제를 호소한 고객이 구매한 제품은 교체해드렸다"며 "이후 협력사의 품질평가 기준을 강화하고 검수 절차를 두 차례로 늘려 더블 체크하는 과정을 구축했다. 시공 단계에서도 작업자가 제품을 한 번 더 검수하도록 제도화했다"고 했다. 또 통신 서비스 문제와 관련해 LG유플러스는 고객 대응을 빠르게 하기 위해 장비 교체 지역에서 상황실을 가동하는 등 대응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올해 1월 2일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직원들이 구광모 LG 회장의 디지털 신년 영상 메시지를 스마트폰으로 시청하고 있다. /LG그룹 제공
시무식을 대체한 구 회장의 동영상 신년사를 두고 직원들 사이에서는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젊은 총수라 다르긴 다르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영상 신년사 시대를 열었다" 등의 반응이 많았다. 2018년 40세의 나이로 LG그룹 수장에 오른 구 회장은 4대 그룹은 물론, 전체 재계를 통틀어서도 가장 젊은 축에 든다. 2007년 36세의 나이로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에 오른 정지선 회장 이후 가장 젊은 나이에 그룹 수장에 올랐다.

LG 계열사의 한 직원은 "시무식에 가는 건 시간낭비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는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영상 내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경영진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효율적이었다"고 말했다. 올 1월 당시 구 회장의 영상 메시지는 글로벌 구성원을 위해 영어 자막과 중국어 자막을 각각 넣은 영상 버전도 전송됐다. 또 다른 계열사의 직원은 "구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계열사 CEO들의 연령대도 많이 낮아졌다"며 "최고 경영자들이 젊어지면서 회사 분위기가 효율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점점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기업 중에선 LG가 영상 신년사의 포문을 열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내년에는 국내 기업 대부분이 신년사를 영상으로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재계 총수들이 젊어지면서 조직 문화를 혁신하고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며 "젊은 총수들은 디지털과 모바일을 이용한 혁신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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