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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세대인식 집중조사④ 세대가 아니라 세상이 문제다 - KBS뉴스

세대론은 특정 연령대를 한 그룹으로 묶는다. 개개인의 성향과 특성이 무시될 소지가 있다. 세대론으로 접근한 여론조사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가령 어떤 사안에 청년 100명 중 67명이 찬성하고 33명이 반대했다고 가정하자. 찬성 응답자 중 40명이 고소득층이고, 반대 33명 중 30명은 저소득층이라면? '67% 찬성'만 참고해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 정책은 저소득층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은 이번 조사 결과를 소득계층별로 분석할 필요를 느꼈다. 아래 2개의 그래프가 그 결과다.

■소득계층별로 크게 벌어지는 청년 인식

"복지를 위해 큰 정부가 필요하다"는 문항에 대한 응답을 소득 계층별로 재구성했다. 50대 응답자의 그래프는 미미하게 우상향한다. 소득 계층에 따른 의견 차이가 크지 않다. 청년층은 확연히 다르다. 가구 소득(부모 소득 포함)이 높아질수록 복지는 필요 없다고 답한 비율이 컸다. 50대는 부자든 가난하든 복지와 큰정부가 필요하다고 여긴 반면 부자 청년일수록 필요 없다고 답한 것이다. 소득계층에 대한 구분 없이 '청년 전체' 평균만 보면 50대 평균보다 다소 아래쪽에 위치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떠어떠하다"는 인식은 이와 같은 평균값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다른 연령대와 달리, 청년들은 계층별 인식에 차이가 크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떠어떠하다"고 한묶음으로 말하기엔 편차가 심하다.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해 내 것을 나눌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공동체 인식에 대한 질문이다. 50대는 성별 구분 없이 고소득으로 올라갈수록 내 것을 나눌 의사도 조금씩 올라간다. 청년 여성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패턴이다. 청년 남성의 곡선을 보며 김석호 교수가 말했다. "이건 논문 거리예요." 그간 학계에서 발견한 적 없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청년 남성은 부자일수록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생각이 없는 경향이 강했다. 오히려 저소득층 청년 남성의 뜻은 다른 어느 집단보다 그래프 위쪽에 위치하는 점도 눈에 띈다. 기성세대가 가져온 보편적 가치, 사회적 합의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신호다.

청년 남성들이 보여주는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부인할 수 없는 돌출 지점이다. 좀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이들은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10대 시기에 무엇을 보고 느껴왔는가. 10대 남성이 각자도생의 경쟁사회만을 체득할 때 어떤 인식이 만들어지는가. 이들에게 성인지 교육은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가. 같은 사회의 교육환경에서 성장한 같은 연령대의 여성과는 왜 이토록 다른가. 이들이 30~40대가 되어 한국의 주축이 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어쩌면 이 질문에는 사회학보다 뇌과학·진화학 쪽에서 더 유용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회 부담 요소가 더 자라기 전에 문제를 꺼내놓고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안타까운 건 최근 정치권이 내놓은 선심성 청년 대책들은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 머리를 맞대기보다 봉합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 '공정 집착' 보이지 않아

평균치에 따라 조성된 사회의 통념도 다시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에게 기회가 적으므로 그들이 공정에 민감하다는 생각은 얼마나 실체와 가까울까.



통념대로라면 위 질문들에 대한 청년들의 막대 그래프는 50대의 그것보다 길어야 한다. 청년세대가 50대와 비교해 공정함에 더 집착한다는 경향은 이번 조사에서 이렇다 할 만한 지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논란에 "불공정하다"는 답변은 청년 57.5%, 50대 49.7%였고, LH 직원 투기 사건에 "불공정하다"는 답변은 청년 85.3%, 50대 85.7%였다. 기존 인식이 확인되는 정도의 수치다. 인천국제공항 사태나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에서 드러난 청년들의 '공정' 반응은, 엄밀한 의미의 공정 요구라기보다 박탈감의 표현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조사 전반에 걸친 청년층의 답변을 보면 '공정 세대'라기보다 '상실의 세대'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음 결과들은 그 방증이다.



청년 다수가 더이상 주거 문제에 희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3분의 1 넘는 응답자는 암호화폐를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상층 이동 가능성이 없다는 50대의 응답 비율이 높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부유층이든 빈곤층이든 인생의 경로가 어느 정도는 정해졌을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아직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키울 청년 연령대의 상층 이동 전망이 50대보다도 좋지 않다. 절망적인 징후다. 이에 대해 임동균 교수는 "이번 조사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이라며 말을 이었다.

■좌절한 청년들이 만드는 20년 후 한국 사회는

"이 문제는 청년 세대가 그저 먹고 살기 힘들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단순한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인류가 오래 전부터 사회적으로 가꾸고 만들어오고자 하는 기본 윤리를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는 문제"라고 했다.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거나, 노력하면 대가가 따를 것이라거나 하는, 보편적인 가치 체계의 문제인 것이다. 임 교수는 "인생은 왜 살아야 되는지, 동료 구성원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가치를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등에 대해 이미 상당히 많은 청년들이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유지해온 공동체의 사회적 해체를 뜻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걱정했다.

김석호 교수는 "청년 중 다수가 정글과 같은 각자도생, 생존주의 원리를 깊숙이 내면화하고 그 원리에 적응해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인식이 미래 세대에게 고착화됐을 때 20년 뒤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계층간 연대나 소수자 배려, 타인에 대한 존중과 같은 가치가 자리잡을 수 있을지 몹시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살아가는 많은 가치들은 대부분 사회 공동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며,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이를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런 속에서 청년들 자신이 이 사회에 가치를 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생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일자리, 주거, 복지, 성평등의 문제다.

그래서 청년 문제는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불평등과 기후위기 속에서 생존 자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표면적인 공정 집착이나 경쟁 의식은 그 속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것일 뿐이다. 세대 인식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일 수 없다.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세대간 인식차를 이용해 인기 전략을 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 해결을 원하는 이라면 인식의 차이를 명확히 안 다음 그 너머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세대간 차이, 세대 갈등만 강조하는 세대론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다. (시리즈 끝)

[글 싣는 순서]
586,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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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본 50대, 50대가 본 청년-50대의 '꼰대 지수'는 몇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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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이대녀’론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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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세대론을 넘어-세대가 아니라 세상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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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연구 : 김석호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사회조사 전공),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사회심리 전공),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심리 전공),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전문위원(정치학 박사)

[연관 영상] ‘시사기획 창’ 334회 -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https://www.youtube.com/watch?v=JRUmJEjfQ3Q&t=157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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